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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변화와 기억: 한국 현대미술 속 과거와 현재의 대화Life/Art 2024. 3. 29. 14:16
MMCA 소장품 특별전에 다녀왔다. 이번 백 투 더 퓨처: 한국 현대미술의 동시대성 탐험가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수집한 소장품을 대중에 선보이는 전시였다.
이번 전시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지난 5년 동안 미술관이 수집한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주목할 만한 특징을 확인하고 이를 집중적으로 전시해 두었다고 한다. 미술관의 작품 수집 정책과 방향에 따라 매년 시기, 장르, 주제별로 고른 수집 분포를 보이는데 그 중 해당 수집 기간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로, 공성훈, 김범, 박이소 등을 포함 1990년대라는 시대전환기를 예술적 토양으로 삼아 한국 현대미술의 동시대적 양상을 드러낸 작가의 작품이 수집되었다는 점이 두드러졌다.
20세기 말, 21세기 초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교차, 혼재하던 시기를 관통하며 성장하고, 한국 미술 현장에 등장하여 지금 우리 현대미술계 주요 작가로 자리매김한 작가들의 작품들도 선보였다.
그리고 같은 기간 전시중이었던 올해의 작가상 2023 전시 작품들을 보았는데 여러 많은 생각들이 교차되며 머리속에서 멤돌았다.
<난장이의 공>
정재호는 국가 주도의 고속 경제 발전 이면의 현실 풍경에 주목하고 작업을 전개했다.
1960~70년대 건설되어 지금은 철거 위기에 처한 시범아파트 단지 등은 작가의 주된 관심 대상이었다. 그는 근대화를 통한 국가 발전과 이를 위한 정치, 사회, 문화적 기제가 도시, 공간, 건축 속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고,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우리의 의식 또한 여기서 자유로울수 없다는 지점을 다루고 있다.
<모뉴먼트 제로(서있는 사람, 안테나, 수미산, 일곱 개의 시간들)><모뉴먼트 제로>는 종이와 유로토 조형물을 제작한 다음 이를 사진 촬영한 작품이다. 작가는 전국 곳곳의 사고 등을 보며 마치 시공간에 구멍이 난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사고로 사라진 존재들을 기리고 싶은 의도를 담고 있다.
<장마>
<장마>는 서울 한강공원을 그린 <살풍경> 연작 중 하나로, 2006년 여의도 한강 시민공원 수영장을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풍경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보잘것없이 메마르고 스산한 풍경을 뜻하는 ‘살풍경’이란 단어와 같이, 화면 속의 인적 없는 수영장 모습은 비 오는 날의 황량한 한강 시민공원의 분위기를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작가는 화면을 가로지르는 수영장의 경계선을 따라 하단의 로프에서 수영장 계단과 안전요원용 의자, 그늘 천막 등을 배치했다. 그는 이 작품이 애초의 사진과 달리 “부정확한 투시로 장소를 포착하면서, 되도록 물감을 얇게 발라서 뿌연 흙탕물의 인상을 포착하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푸른영토 20>
금혜원의 <푸른 영토> 시리즈는 도시 재개발 공사 현장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한 작업이다. 작품에서 ‘푸른 영토’는 철거지 내 침수 방지를 위해 덮어 놓은 파란색 방수포를 말한다. 작가는 이 푸른 영토를 재개발 논리에 의해 짓눌린 상황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았다. 개발에 의해 얻게 될 기쁨과 그로 인한 또 다른 아픔을 파란색을 통해 담아내고자 했다. 극사실적인 현장의 모습은 파란색 방수천으로 인해 초현실적인 풍경을 자아냄으로써 묘한 혼돈과 이질성을 가져온다.
<남과 여>
이동기의 초기 다큐멘터리 만화 작품 중 하나인 <남과 여>(!990)는 상반된 두 이미지와 단어를 한 화면에 배치한 작업이다. 작가는 서로 다른 개념과 이미지를 나란히 병치시켜 현상에 대한 흑백논리, 그 관습적 사고방식을 언급하고자 했다. 이 작품에서 이동기는 대중만화에 나올 법한 이미지와 기법으로 인물을 표현했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이미 충분히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미지를 가져와 회화로 그려냈는데, 이를 통해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으며, 창조하지 않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언급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50회 베니스비엔날래 한국관 작가로 박이소는 각목으로 제작한 위태로운 도시를 표현했다. 직사각형 구조의 각목은 물이 찬 4개의 세숫대야에 각각 다리를 내려 버티고 있다. 대양를 채운 물은 베니스 바다를 의미하고 각목의 틀은 비엔날래를 개최하는 베니스 시를 상징한다. 각목 프레임 모서리에 사선으로 걸쳐진 2개의 각목에는 각각 베니스비엔날레 자르디니 공원에 있는 26개의 국가관과 3개의 아르세날레 주제관이 약 3cm 크기의 조각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실제 국가관들은 규모와 크기가 모두 다르지만 작가의 작품 속 미니어처 조각에서는 유사한 크기로 동일화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자신의 욕망 표출 창구이자 동시에 문화 패권주의의 표상인 비엔날레 국가관과 비엔날레의 권위에 물음표를 던졌다.
<역사의 문/역사적인 문>
<역사의 문/역사적인 문>(1987)의 화면 가장자리에는 문 문자가 거꾸로 서서 마치 옛 가옥의 문처럼 자리하고 있으며 그 중앙에는 토끼가 있다. 원작에서는 캔버스 상단에 검은 플라스틱 솔이 부착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유실되었다. 1987~9889년 작가가 작성한 작업 노트에는 ‘과학적’, ‘비과학적.’, ‘감정적’, ‘양심적’, 상징적’, ‘정치적’, ‘비정치적’, ‘전통적’, ‘비전통적’ 등 ‘~적’이라는 단어가 주로 등장한다. 이와 같은 형용사는 사람마다 그 정도를 달리 받아들이기 때문에 의미는 지속적으로 차이를 생산한다.
‘역사’가 ‘역사적’이라는 형용사로 변할 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지고 의미는 덧붙여진다. 화면 속 토끼 형상은 박이소의 아이디어 스케치와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이다. 토끼 형상의 의미에 대해 한국적 감수성의 “달토끼”라고 보는 이도 있고, 한반도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지만 정작 작가는 그 의미를 정확히 밝힌 바 없다.
<개>
작가는 1990년대 후반 경기도 고양식 벽제동으로 이사하면서 주변에서 목격한 일상의 풍경을 화목에 옮기는 ‘벽제의 밤’ 연작을 시작했다. 일과를 마치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가 마주한 장면은 낮과는 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이중적인 풍경이었다. <개>(2001)는 ‘벽제의 밤’ 연작 중 하나로, 개 한 마리가 배회하고 있는 어두운 밤 풍경을 보여준다. 조명을 받은 듯 붉게 빛하는 화면 중앙은 푸른 색조의 주변 분위기에 싸여 대조를 이룬다. 움직이는 장면을 포착한 듯 개 형체를 어렴풋하게 표현한 까닭에 화면에서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영원한 친구와 손에 손잡고>
<영원한 친구와 손에 손잡고>(2016)는 안정주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네프켄재단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제작한 영상 작업이다. 작가는 자신의 유년 시절 향수를 불러오는 1988년 서울올림픽,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공식 주제가인 손에 손잡고와 영원한 친구(AMigos para Siempre)를 하나의 곡으로 리믹스해 중계 영상과 함께 편집했다. 올림픽 개막 행사와 경기 장면 중 일부는 원본과 다르게 재생 속도가 조작되거나 짧은 프레임으로 반복되면서 시각적 균열과 긴장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효과는 아날로그 TV의 흐릿한 화면과 노이즈 현상으로 증폭되는데, 세계화를 향한 시대의 열망을 상징하는 국가적 행사와 그 이면에 놓인 갈등과 모순을 현재의 시각에서 환기한다.
올해의 작가상 2023<올해의 작가상> 제도 변화의 소개
2012년 시작한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과의 중요 연례 전시이자 동시대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수상제도이다. 전도유망한 주요 중견작가들의 전시와 수상, 지속적인 후원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가능성과 비전을 제시해 온 본 수상제도는 지난 2022년 10주년을 맞이하여 대대적으로 제도를 개선하였다. 우선, 작가들의 제작지원을 강화하고, 후원의 규모를 확대하였다. 또한 작가의 신작 커미션 뿐만 아니라, 이전 중요 작업들을 전시에 함께 출품함으로써, 전시 기획을 강화하고, 작가의 주제의식과 예술세계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심화하였다. 마지막으로 최종심사의 방식을 과감히 변화시켜,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심사위원들이 선정된 작가들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과정을 신설하였다. 2024년 2월 진행될 심사위원-작가간 대화를 통해 올해의 작가상이 단순한 수상제도가 아니라 한국 동시대 미술과 국제적인 미술계가 만날 수 있는 장으로 작동하고, 더 나아가 미술관을 찾는 대중들이 동시대 미술을 보다 적극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고자 한다고 한다.
우리를 속박하는 장소로부터의 영원한 탈출
갈라 포라스-김은 LA와 런던을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이다. 작가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컨텍스트가 언어학과 역사학, 보존의 영역에 있는 소리, 언어, 역사와 같은 무형의 유산을 규정하고, 정의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작가의 작업은 박물관이나 미술관과 같은 기관이나 제도가 역사적으로 계승되어 온 관습과 형식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살펴보는 한편, 유물과 오브제가 그들이 위치한 장소의 맥락을 설명하는 방식을 살펴본다.
작가의 작업은 종교적 믿음이나 죽음과 같이 지나온 모든 문명이 관심을 갖고 흔적을 남긴 유물들에서 시작한다. 석관과 고인돌과 같이 삶과 죽음을 경외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대의 오브제들이 현대의 박물관과 미술관, 문화유산 등의 시스템 속에서 본래의 기능을 잃고, 예술작품이나 국보로 분류되어 수장고와 전시장에 전시되는 상황에서 작가는 물건을 만들고 숭배하던 고대인들의 뜻과 현대의 제도를 화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작가는 고고학이나 역사학 등의 학술적 자료들과 종교적 믿음, 민속적인 전통을 탐구하여 현재의 근대적 제도가 과거의 전근대적 제도를 차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고인돌과 미술관 공기 중의 수증기와 같이 본래 자연의 일부이던 것들이 종교적 믿음과 문화적 제도의 일부가 되고, 일상 생활의 한 부분으로 차지 하였다가 다시 자연과 인위적 분류의 가운데 서서 시간을 견뎌내는 과정을 관찰하여 전달한다.
영원 불멸하고 강건해 보이는 역사적 구조물도, 강력한 제도와 법도 지질학적 시간 속에서 부식되고 역사적 과거와 자연의 변화를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인간에 대한 보편적 이해, 범신론적 믿음을 바탕으로 현대 문명의 기반을 이루는 법과 제도, 학문의 분류 체계와 예술의 역할 등을 우주적인 시공간 위에 놓고 재단한다.
신호 예보
이 작업은 설치 공간 내부의 습기와 온도를 기반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함께 놓여있는 산업용 제습기 역시 작업의 일부로, 방안의 습기를 모아 액상 흑연에 흠뻑 젖은 천 위로 흘려보낸다. 제습기를 통해 떨어지는 물방울은 일정 시간 동안 모인 습기의 양을 기록하는 신호가 되어 전시 기간 동안 모인 습기의 양을 기록하는 신호가 되어 전시 기간 동안 패턴을 형성한다. 새로운 공간에 설치될 때마다 다른 이미지가 만들어지며, 습기와 수분을 터부시하는 전시 공간의 공기 안에 이미 물이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피바디 박물관에 소장된 비를 위한 303점의 제물들
피바디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치첸 이차(멕시코 중부에 있는 고대 마야족 도시의 대유적)의 신성한 천연동굴(세노테)에서 발굴된 유물들에 대한 기록을 확인하고 작업한 것이라고 한다.
영국 박물관의 호르(Hor)와 수티(Suty) 화강암 석비 연주회이 작업은 영국 박물관의 소장품인 호르와 수티의 기념비를 실물 크기의 드로잉으로 그린 것이다. 음각에 상형문자로 이 기념비에 새겨진 글들은 고대 이집트 시기 두 형제간의 우애를 칭송하는 찬가이다. 본 석비에서는 이 찬가를 통해 호르와 수티를 쌍둥이로 묘사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형제가 아닌 동성 연인에 관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은 이집트 학자 하이디 쾨프-융크(Heidi Kopp-Junk)가 이 고대의 찬가를 새롭게 해석한 곡으로, 당대 사용되었던 악기를 본떠 제작한 재현 악기를 이용해 연주했다.
누가 우리를 돌보는 이들을 보살피게 될까누가 우리를 돌보는 이들을 보살피게 될까 2022
삼베에 엔틱 24k 금실, 호두나무 액자
학고제
학고제는 이번 전시를 위해 세 명의 작가를 선정했다. 첫째는 백남준(1932-2006)이다. 말년에 주역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주역에 나오는 함괘의 가치는 소중하다. 이번 전시에는 미래의 인터넷 세상을 예건한 <W3>, 냉전 종식 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제창한 세계 화합의 가치를 기리는 <구-일렉트로닉 포인트>, 그리고 인터넷의 보편화가 인류 평등의 세계를 건설할 것이라는 작가의 믿음이 반영된 <인터넷 드웰러>가 출품된다.
두 번째 작가는 동아시아 여성주의 예술의 대모인 윤석남(1939-)이다. 버려진 나무에 유기견의 형상을 깎아 만들고, 그 위에 먹으로 그려서 완성한 작품을 출품했다. 사람과 동물이 동등하다는 뜻을 함축했다고 한다.
세 번째 작가는 길길후(1961-)이다. 변화무쌍한 창조성을 갖춘 작가는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회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의 예술 화두는 ‘현자’와 바른 깨우침’의 의미를 회화로 표현하는 방법에 자리한다. 작가는 그림의 진실한 추구에서 여래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 내면에 이미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Sentient beings’는 중생과 같은 말이다. 호주 출신의 철학자 피터 싱어(1946-)가 제창한 개념으로, 그는 우리가 인간 중심적 휴머니즘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