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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ook-review 2024. 7. 9. 13:26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844년 프로이센의 뢰켄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목사인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누이동생과 함께 할머니 댁에서 자랐다. 열네 살에 슐포르타 기숙 학교에서 엄격한 고전 교육을 받고, 1864년 본 대학교에 진학해 신학과 고전 문헌학을 공부했다. 1865년 스승인 리츨을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교로 옮겨 간 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바그너를 알게 되어 그의 음악에 심취했다.

    1869년 리츨 교수의 추천으로 스위스 바젤 대학교의 고전 문헌학 교수가 된 그는 1870년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전투에 지원, 위생병으로 복무했으나 건강을 해쳐 바젤로 돌아왔다. 스물여덟 살에 첫 작품 『비극의 탄생』을 펴냈으며, 1873년부터 1876년까지는 독일과 독일 민족, 유럽 문화를 통렬히 비판하며,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를 새로운 인간형으로 제시한 『반시대적 고찰』을 집필했다. 그러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집필할 무렵 절친했던 바그너와 결별한 그는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바젤 대학교를 퇴직하고, 이후 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요양지에 머물며 저술 활동에만 전념했다.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으로 유럽 문명의 몰락을 예언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초인’, ‘힘의 의지’, ‘영원회귀’ 등 니체의 핵심 철학이 장쾌하고 시적인 언어로 집약된 대표작이다. 1888년 말경부터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해 이듬해 1월에 이탈리아의 토리노 광장에서 쓰러진 뒤, 1900년 바이마르에서 사망했다. 그 밖의 저서로 『즐거운 학문』, 『우상의 황혼』, 『선악의 저편』, 『힘의 의지』, 『이 사람을 보라』등이 있다.

     

    1부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

     

    세 가지 변화에 대하여

    나는 그대들에게 세 가지 변화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어떻게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며, 사자는 마침내 아이가 되는가를.

    내면에 외경심이 깃들어 있는 강력한 정신, 인내심 많은 정신은 무거움 짐을 잔뜩 지고 있다. 그 정신의 강인함은 무거운 짐을, 가장 무거운 짐을 요구한다.

     

    덕을 가르치는 강의에 대하여

    잠을 잔다는 것, 그것은 결코 하찮은 기술이 아니다. 낮 동안 열 번 그대는 자신을 극복해야 한다. 낮 동안 열 번 그대는 자신과 다시 화해해야 한다. 낮 동안 열 가지 진리를 그대는 찾아내야 한다. 낮 동안 열 웃고 쾌활하게 지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를 더 알아야 한다. 이러한 덕들도 올바른 시간에 잠재워야 한다는 사실을.

     

    세계 너머의 세계를 믿는 자들에 대하여

    몸에 절망한 자는 다름 아닌 몸이었다. 그 몸이 무지몽매한 정신의 손가락으로 궁극의 벽을 더듬은 것이다.

     

    몸을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

    나는 그들에게 새로 배우고 새로 가르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자신의 몸에 작별을 고하고 침묵하라고 말할 뿐이다. 감각이 느끼고 정신이 인식하는 것. 그것은 그 자체 내에 어떠한 목적도 가지지 않는다. 감각과 정신은 도구이자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 그대의 사상과 감정의 배후에는, 형제여, 강력한 명령자, 알려지지 않은 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이 자기다.

     

    환희와 열정에 대하여

    인간의 규범이나 인간의 필수품으로서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덕은 나에게 대지의 저편이나 천국으로 안내하는 이정표가 되어서도 안 된다.

    이 땅에서의 덕, 이것이 내가 사랑하는 바다. 그 덕은 별로 열리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들이 가진 이성도 아주 조금만 지니고 있을 뿐이다.

     

    창백한 범죄자에 대하여

    재판관들이여, 그대들은 앙갚음이 아니라 동정심에서 범죄자를 처형해야 한다. 그리고 그대들은 사형을 집행하면서 그대들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도록 애쓰라!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나는 모든 글 가운데서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쓰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되리라. 다른 사람의 피를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게으름뱅이들을 미워한다.

    독자를 잘 아는 자라면 독자를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독자가 백 년을 산다면, 정신 자체가 썩는 냄새를 풍기리라.

     

    산비탈의 나무에 대하여

    이 나무를 두 손으로 흔들고 싶어도 내게는 그럴 만한 힘이 없네.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은 이 나무를 괴롭히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구부리지. 이와 같이 인간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가장 심하게 구부러지고 고통받는 거네.

     

    죽음을 설교하는 자들에 대하여

    대지는 쓸데없는 자들로 가득하며, 삶은 너무도 많고 많은 어중이떠중이들 때문에 썩어 있다. 그들은 영원한 삶이라는 미끼로 유혹하여 이 삶으로부터 떠나 버리게 만든다면 좋으련만

    노란 인간들. 사람들은 죽음의 설교자를 이렇게 부른다. 아니면 검은 사람들이라고도 부른다.

    마음속에 야수를 품고 돌아다니면서 쾌락에 빠져들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을 갈기갈기 찢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을 하지 못하는 끔찍한 인간들이 있다. 그리고 쾌락이라고 했지만 그것도 자기 몸을 갈기갈기 찢는 것이다.

     

    전쟁과 전사들에 대하여

    전쟁중인 내 형제들이여! 나는 진정으로 그대들을 사랑한다. 나는 그대들 마음속의 증오와 질투를 안다. 그대들은 자신의 적을 찾아내어 자신의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사상을 위해!

    그개들은 평화를 사랑하되, 새로운 전쟁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사랑해야 한다.

    사람이란 활과 화살을 가질 때에만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다. 그러지 못할 경우에 사람들은 재잘거리며 다툰다.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

    국가는 가장 냉혹한 괴물들 가운데서 가장 냉혹하다. 그 괴물은 차갑게 거짓말한다. 그 괴물의 입에서는 “나, 즉 국가는 민족이다.”라는 거짓말이 기어 나온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민족을 창조하고 그 민족으로 하여금 하나의 신앙과 하나의 사랑에 매달리게 한 것은 창조하는 자들이었다.

     

    시장의 파리 떼에 대하여

    숲과 바위는 그대와 더불어 기품 있게 침묵할 줄 안다. 이 세상의 가장 훌륭한 것들도 그것을 연출하는 자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이러한 연출자들을 군중은 위인이라고 부른다.

    군중은 위대한 것, 즉 창조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위대한 일을 연출하는 자들과 배우들에 대한 감수성만은 가지고 있다.

    세계는 새로운 가치의 창조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며, 눈에 보이지 않게 회전한다. 그러나 군중과 명성은 배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란 이와 같다.

     

    순결에 대하여

    순결을 지키기 어려워하는 자에게는 순결에 매달리지 말도록 권해야 한다. 순결이라는 것이 지옥으로 이르는 길, 즉 영혼의 진창과 욕정의 길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식하는 자가 그 진리의 물속으로 뛰어들기를 꺼리는 것은 그 물이 더러울 때가 아니라 얕을 때다.

    순결이란 어리석음 아닌가? 순결이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지, 우리가 순결에 다가간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손님에게 잠자리와 마음을 제공했다. 이제 그는 우리 곁에서 산다. 머물고 싶다면 얼마든지 있으려무나!

     

    벗에 대하여

    사람들은 이따금 사랑으로 질투를 뛰어넘으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따금 자신이 공격당할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공격을 시작하고 적을 만든다.

    벗을 원한다면 그 벗을 위해 전쟁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적이 될 줄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벗도 적으로 존경할 줄 알아야 한다. 그대는 그대의 벗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단 말인가?

    그대의 벗에게서 자신의 최강의 적을 찾아야 한다. 그대의 벗을 적대할 때 그대는 마음으로 그대의 벗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그대는 벗 앞에서 어떠한 옷도 걸치지 않으려 하는가? 하지만 그대의 벗은 그대를 악마에게 넘겨주고 싶어 할 것이다!

     

    천 개의 목표와 하나의 목표에 대하여

    가치 평가를 통해 비로소 가치가 생겨난다. 그러므로 그런 평가가 없다면 현존재라는 호두는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가치의 변화. 그것은 창조하는 자의 변화를 말한다. 창조하는 자가 되려는 자는 언제나 파괴하기 마련이다.

     

    이웃 사랑에 대하여

    일찍이 세계가 벗 앞에서 굴러가 버린 것처럼, 이제 세계는 다시 둥그런 고리를 이루며 벗에게로 되돌아온다. 악을 통해 선이 생겨나고, 우연으로부터 여러 목적이 생겨나듯이.

    미래 그리고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오늘 그대의 존재 이유가 되기를. 말하자면 그대는 벗의 내부에 있는 초인을 그대의 존재 이유로서 사랑해야 한다.

     

    창조하는 자의 길에 대하여

    그대의 사랑과 함께, 그리고 그대의 창조와 함께, 형제여, 그대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나중에야 정의가 절름거르며 그대를 따라오리라.

    나의 눈물과 함께 그대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형제여, 자신을 넘어 창조하려 하고, 그럼으로써 파멸하는 자를 나는 사랑한다.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에 대하여

    진정한 남자 안에는 아이가 숨어 있다. 이 아이는 놀이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남자의 마음은 깊고 그 흐름은 땅 아래 동굴 속으로 쏴쏴거리며 흘러간다.

    노파여, 내게 당신의 작은 진리를 주시오 그러자 노파가 대답했다. “여자들에게 간다고? 그럼 회초리를 잊지 말게!”

     

    독사가 문 상처에 대하여

    은둔자는 깊은 샘물과 같다. 그 속으로 돌을 던지기는 쉽다. 그러나 그 돌이 바닥에 가라앉고 나면, 누가 그것을 다시 꺼내려고 하겠는가?

    은둔자를 모독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

     

    아이와 결혼에 대하여

    그대들은 언젠가는 자신을 넘어서서 사랑해야 한다. 그러니 우선 사랑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라!

    최선의 사랑이라는 잔 속에도 쓴맛은 있다. 그리하여 이 사랑은 초인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키며, 그대 창조하는 자를 목마르게 한다!

     

    자유로운 죽음에 대하여

    나는 그대들에게 나의 죽음을, 내가 원하기 때문에 나를 찾아오는 자유로운 죽음을 권한다. 그런데 나는 언제쯤 죽기를 원해야 할까? 목표와 후계자를 가진 자는 그 목표와 후계자를 위해 알맞은 때에 죽기를 원한다.

     

    베푸는 덕에 대하여

    황금은 어떻게 최고의 가치를 가지게 되었는가? 진귀하면서도 그 쓰임새가 정해지지 않았고 번쩍이면서도 그 빛이 부드럽기 때문이다. 금은 오직 최고의 덕의 이미지로서만 최고의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2부

    거울을 가진 아이

    나의 드센 지혜는 고독한 산 위에서 잉태되었다. 그리고 험준한 바위 위에서 나의 지혜는 아이를, 마지막 아이를 낳았다.

    그대들의 사랑 위에 나의 드센 지혜를 자신의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아이를 눕히고자 한다!

     

    행복의 섬에서

    돌 속에는 하나의 형상이, 내가 바라는 형상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형상이 잠들어 있다! 아, 그 형상이 단단하고 흉하기 그지없는 돌 속에서 잠들어 있어야 한단 말인가!

     

    동정하는 자들에 대하여

    그곳으로부터 인간들에게 짙은 먹구름이 몰려온다!

    하지만 모든 창조하는 자들은 냉혹하다.

     

    성직자들에 대하여

    거짓 가치와 미혹의 말들. 그것은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인간들에게는 최악의 괴물이다.

     

    도덕군자들에 대하여

    그대들은 아직도 대가를 바라는구나! 덕에 대한 대가를, 대지에서의 삶에 대한 대가로 천국을, 그리고 그대들의 오늘에 대한 대가로 영원을 바라는가?

     

    천민에 대하여

    나는 정결한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를 드러내며 웃는 입이나 불길한 자들의 갈증은 보고 싶지 않다.

    그들이 샘물 속으로 시선을 던지면, 그 역겨운 미소가 샘물로부터 나에게로 반사되어 올라온다.

    그들은 이 신성한 샘물에 음욕의 독을 탔다.

     

    타란툴라에 대하여

    이름 높은 현자들에 대하여

    밤의 노래

    춤의 노래

    무덤의 노래

    자기 극복에 대하여

    고매한 자들에 대하여

    교양의 나라에 대하여

    결벽 성향의 인식에 대하여

    학자들에 대하여

    시인들에 대하여

    커다란 사건에 대하여

    예언자

    구제에 대하여

    지혜로운 대인관계에 대하여

    가장 고요한 시간

     

    3부

    방랑자

    환영과 수수께기에 대하여

    원하지 않은 행복에 대하여

    해 뜨기 전에

    왜소하게 만드는 덕에 대하여

    감람산에서

    스쳐 지나감에 대하여

    배신자들에 대하여

    귀향

    세 가지 악에 대하여

    중력의 영에 대하여

    낡은 서판과 새로운 서판에 대하여

    치유되는 자

    위대한 동경에 대하여

    또 다른 춤의 노래

    일곱 개의 봉인

     

    최종부

    제물로 바친 꿀

    긴박한 외침

    왕들과의 대화

    거머리

    마술사

    일자리를 잃음

    더없이 추악한 자

    제 발로 거지가 된 자

    그림자

    정오에

    환영 인사

    만찬

    차원 높은 인간에 대하여

    슬픔의 노래

    학문에 대하여

    사막의 딸들 사이에서

    일깨움

    나귀 축제

    밤 산책자의 노래

    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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